0309, 300x500cm, mixed media, variable installation, 2026.
사회 초년생의 자리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말 가운데, 잊고 싶지만 끝내 상기되는 기억과 붙잡아야 하지만 공기 중에서 반짝이다 흩어지는 단어들을 시각화한 작업 〈1105〉를 기반으로 한 본 작업 〈0309〉는 서른에 접어들어서야 처음으로 걸음을 멈추고 도움을 청하기로 한 날에서 출발한다.
더 잘하고 싶었다. 더 잘 해내지 못하는 내가 미웠고,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마주한 속상함조차 쌓이고 쌓여 경험이 되면 너 멀리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밤을 새워 만든 결과물 앞에서도 나를 헤집은 상처가 눈에 밟혔고, 정작 기억해야 할 말들은 손에 쥐기도 전에 흩어져버렸다. 열정이라 믿었던 마음의 크기는 결국 우울이라는 이름으로 진단되었다.
20대의 끝에서 쏟아지던 날카롭고 다정한 말들을 모두 끌어안고 걸어 나갔던 나는, 30대의 시작점에 서서야 비로소 앞과 뒤가 아닌 안을 들여다보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루어낸 것들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인쇄물 한 귀퉁이에 새겨진 이름, 어느 해 어딘가에서 활동했던 흔적처럼 기록으로 남아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들. 분명히 들었지만 마음에 저장하지 못하고 흩어져버린 다정한 말들. 그리고 실체는 없지만 그 모든 것을 덮을 만큼 무겁게 짓누르던 감정들. 문득, 가장 단단한 물질로 남은 기록은 빛에 비쳐 사라질 듯 흐릿했고, 다정한 말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얇은 천 조각처럼 손끝에 닿지 않았으며, 형체조차 없는 감정만이 그 모든 것을 덮는 빛처럼 가장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의 시작에서 마주한 깨달음의 시각화인 본 작업은, 여전히 사회생활을 이어가며 스스로를 돌보고 있는 나의 시선 속 위계를 세 겹의 레이어로 드러낸다.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흐릿하게 기억된 성취는 반투명하지만 분명한 물질로 남기고,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더욱 되새기고 온전히 기억해야 할 문장들은 손상되었지만 선명한 형태로 붙잡았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진실을 덮고 있는 고통스러운 기억은, 잊을 수 없지만 흘려보내야 하기에 형체 없는 디지털의 빛으로 재현했다. 안으로 갈수록 단단해지고 밖으로 갈수록 가벼워지는 이 겹들은, 가장 가벼운 것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던 나의 시선을 그대로 닮아 있다. 이를 다층적으로 배치해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분명한 증거와 기억해야 할 즐거움, 흘려보내야 할 상처를 분리된 듯 보이지만 복합적으로 연결된 세 종류의 기억임으로 상징했다.
특히 빔프로젝터를 통해 투사되는 영상은 실재했던 상황이지만, 그 안에 매몰되어 있던 나의 감정으로 재구성된 것으로, 진실이 아닌 감정의 관점이다. 관객이 빛과 레이어 사이에 들어서는 순간, 그림자가 드리운 자리에서는 감정의 빛이 걷히고, 그 아래 갇혀 있던 진실, 실제로 존재했던 열정과 잊혀가던 칭찬들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혼자서는 끌 수 없던 빛을 누군가 가려줄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는 타인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행위가 지닌 무게를 드러낸다.
우리는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다. 출발점은 분명하지만 종착지는 알 수 없는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더 많은 고통과 마주할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확실성과 두려움 앞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만 빛에 눈이 부셔 더 이상 걸음을 뗄 수 없다면, 잠시 그림자를 내어달라 청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숨을 고르고, 흐릿해진 기억을 선명히 되짚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믿음을 다시 확인한다면,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https://youtu.be/UpQD99T8akc?si=c7nftEK7BQ8IF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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